1. 시작 안내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박현진 작가의 개인전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도록 안내를 시작합니다.
지금 손에 들고 계신 도록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 책자입니다. 앞표지와 뒤표지를 연결하여 작품 Perfumegraphy 사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앞표지의 오른쪽에는 밝은 노란색과 약간의 분홍색이, 그 왼쪽에는 하늘색이 물에 퍼지는 물감처럼 영역을 넓혀 나가는 모양새로, 뒤표지에서는 여러 색이 부드럽고 탁하게 섞여 있습니다. 표지 왼쪽 세로 방향으로 전시 제목인 'tran-sense-lation'이 크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작가 이름 'hyunjin park'가, 왼쪽 상단에는 한국어로 '감각'이 적혀 있습니다.
도록은 총 38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전시 정보 페이지. 둘째, 기획자 글. 셋째, 전시 및 작품 사진. 넷째, 대담 텍스트. 다섯째, 비평 텍스트입니다. 각 부분을 순서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2. 전시 정보
박현진 개인전. 전시 기간은 도록에 수록되어 있으며,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팩토리 2입니다.
주최 및 주관은 김재아와 박현진입니다. 글은 김재아, 박예원, 안희제가 썼습니다. 포스터 디자인은 이석현이, 도록 디자인은 아인투아인 랩이 맡았습니다. 조향은 아인투아인의 김준범이 담당했습니다. 도움은 해민해가 주었으며, 장소는 팩토리 2입니다.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의 2025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입니다.
3. 기획자 글 — 김재아
제목: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어떤 순간에 향은 사진이 된다. 전시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빛과 물질이 만들어내는 의도적이거나 우연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 순간에 다가간다. 박현진은 지난 2년 간 포용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스튜디오 아인투아인과 중도 시각장애인 조향사가 향수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뒤 다른 감각이 열렸다는 조향사의 이야기는 박현진이 향으로 구현된 세계를 사진의 언어로 번역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개인의 감각이 설정하는 고유한 우주를 횡단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전시의 이름인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이 과정을 기호화한 것이다. 번역(translation)의 과정이 출발과 도착 언어 사이를 매개하고 감각(sense)은 그 안에서 작동한다. 전시명에 두 가지 언어가 공존하는 것처럼 사진, 향, 텍스트는 서로를 지시하고 무언가를 탈락시키거나 더하면서 서로에게 기울어진다. 이곳에서 여러 지지체를 입은 모든 사진은 직접 만지고 접촉할 수 있는 존재이다.
전시는 사진이라는 매체와 서로 다른 신체가 감각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새로 진입하는 이들이 겪게 될 경험 사이를 천천히 진동한다. 박현진은 향을 두 갈래의 사진으로 번역한다. 첫 번째 시리즈의 작품 제목은 특정한 분위기를 가리키는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의미를 짐작하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불러낼 것이다. 사진의 서사적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깨끗한 셔츠를 입은 뒷모습 위에 비치는 나뭇잎 그림자, 나무 탁자 위 지구본, 습기가 찬 매끄러운 표면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담은 사진들은 각기 다른 세 개의 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이들이 환기하는 기억이나 연상하는 이야기는 그곳으로 회귀하지 않고 어딘가로 미끄러진다. 사진은 이미지를 통해 사후적으로 대상을 재구성 하지만 그와 같아질 수는 없다. 더구나 여기서 지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조향사의 내면에서 축조된 세계이다.
두 번째 시리즈 〈Perfumegraphy〉(2024–2025)는 그 사이에서 희미해지는 연결을 붙잡는다. 대상을 촬영한 첫 번째 사진들 가까이 부드럽고 추상적인 흐름이 드러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창문 가까이 걸린 사진, 벽을 덮은 사진, 풀려나오며 안쪽 방을 채우는 사진이 놓인 장소는 순서대로 점차 어두워진다. 각 사진은 인접한 첫 번째 시리즈의 사진이 가리키는 향을 상상하게 한다. 박현진은 조향사의 향수에 필름 매거진을 넣어 일정 시간 숙성함으로써 향을 개입시켰다. 그 결과 손상된 필름에는 우연적인 색과 모양이 드러나게 되었다. 작가는 '우발적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감광된 필름은 향을 내는 물질에 접촉하여 화학적으로 변화했다. 이때 향이 필름에 하는 일은 작가의 시도와 맞닿아 있다. 어떤 만남은 시간이 걸리고 연루된 이들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흔적이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은 곧 타인과 '나'의 감각 사이의 간극을 경유하여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를 생성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상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번역의 과정에서 창출되는 것은 지시 대상을 온전히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놓치고 더하면서 더 많은 것을 말하게 된다. 때로 흔적은 비가역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찢고 나오거나 틈새로 빠지는, 절대로 보편적인 단어들 안에 포착될 수 없는 경험과 이미지로 전환된다.
박현진은 우회하거나 건너뛸 수도 있을 문제들을 쥐고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건다. 동시에 이들을 충실하게 고민하여 자신 안에 맺히는 상으로 옮겨놓고자 한다. '여전히 사진 한 장의 힘을 믿는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닿을 수 있는 사진을 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로 짐작하건데 이는 닿기를 기원하는 끈질긴 다가감에 가깝다. 중심화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른 존재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들뢰즈가 이야기한 '-되기(devenir)'는 스스로를 그 존재의 자리에 대입해서 동일시 하는 일이기보다 관계의 형식들 안에서 창발할 수도 있을 새로운 항을 경유하여 접속하는 일에 가깝다.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와 이해관계 속에서 어떤 지대는 의도나 목적 없이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는 뜻밖의 관계이거나 감정일 수도, 때로는 사진 작품일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것에 의지한다.
감각에서 출발해서 횡단까지 도달하는 사이에는 translation과 sense가 하이픈(-)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감각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릅쓰고 기꺼이 하이픈이 '-되기'로 한다. 혹 공간에서 만난다면 당신이 사진을 어떻게 관람했는지, 전시에 언뜻 등장하는 향을 어떻게 목격했는지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만지고 맡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지대에 다가서는 과정이다.
4. 작품 및 전시 사진 안내
기획자 글 다음에는 전시 전경 사진과 작품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전시 전경
팩토리 2 외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낡은 목재 지붕과 'FACTORY'라는 간판이 보이는 2층짜리 건물입니다. 건물 안쪽으로 전시 작품들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입구 옆에는 분홍빛과 회색빛이 섞인 Perfumegraphy 사진을 프린트한 천이 걸려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습니다. '전시장의 모든 사진은 직접 만져보고 가까이에서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QR 코드도 함께 부착되어 있으며, '공간 안내 및 시각 정보 텍스트'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시리즈 — 촉감향 사진들
전시장 흰 벽면에 다섯 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는 전경 사진이 있습니다. 각 사진은 흰 액자에 담겨 있으며, 내용물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사진: 나무로 된 단층에 물이 고여 있고, 방금 물을 떨어뜨린 듯 파문이 가운데부터 원을 그리며 번져가는 모습. 두 번째 사진: 물방울이 맺혀 있는 등이 확대된 모습. 세 번째 사진: 푸른 색조의 희뿌연 유리 너머로 나뭇잎이 많은 나뭇가지가 있고, 나뭇잎 일부는 표면에서 멀어져서 흐릿한 형상. 네 번째 사진: 흰 셔츠를 입은 사람의 뒷모습으로, 등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고 옷깃에 닿을 정도로 짧은 머리 아래 셔츠에 나뭇잎의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 다섯 번째 사진: 나무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숲의 풍경.
또한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지구본을 촬영한 사진이 한 점 벽에 걸려 있습니다. 나무 소재의 받침대 위에 오래된 지구본이 올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매끄러운 표면에 습기가 차 있어 전체적으로 희뿌연 화면 가운데 긴 사각형의 빛이 비치는 사진, 습기로 불투명한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모습의 사진도 각각 한 점 있습니다.
두 번째 시리즈 Perfumegraphy (2024–2025)
필름에 향수를 직접 개입시켜 만든 추상 사진 시리즈입니다. 도록에는 다수의 Perfumegraphy 사진이 수록되어 있으며, 크기는 29.7 x 42cm 판형입니다.
사진들은 분홍, 초록, 파랑, 주황, 노랑, 보라 등 다양한 색이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번지는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 사진에는 타원형이나 긴 방울 모양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이며, 색들이 물결치듯 흘러가는 느낌을 줍니다. 일부 사진은 붉은색과 검정의 강렬한 대비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진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한 파스텔 톤입니다.
전시장 안쪽 방에는 이 사진들을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이어 붙인 설치 작품이 있습니다. 사진들이 위에서 아래로 연결되어 벽에 세워졌다가 바닥으로 풀려나오는 형태이며, 마치 필름 롤이 펼쳐지는 것 같은 모양입니다.
또한 벽면 전체를 채운 Perfumegraphy 사진 설치도 있습니다. 3열 6행으로 총 18점의 사진이 격자 형태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사진은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흰 받침대 위에 유리 구슬 다섯 개가 놓인 사진이 있습니다. 구슬들은 투명하거나 연한 분홍빛이며, 내부에 청록색 얼룩이 보입니다.
트레이 안에 해민해 작가의 해석으로, 각기 다른 맛이 나는 가루들과 사진 사탕을 함께 설치한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습니다.건조한 딸기, 코코넛, 흑임자, 무화과 등 다양한 재료를 건조하여 곱게 간 색색의 가루 들이 각 구역에 나뉘어 담겨 있고, 그 위에 유리 구슬처럼 보이는 사탕들이 놓여 있습니다. 사탕들은 Perfumegraphy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5. 대담. 박현진, 김재아, 안희제 (2025)
다음은 작가 박현진, 기획자 김재아, 문화비평가 안희제 세 사람의 대담 전문입니다.
안희제:
현진 작가님이 작업을 해오시는 동안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초점이 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김준범 조향사님과 알게 된 계기, 그리고 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현진:
김준범 조향사님을 만난 지는 한 2년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2023년에 우리들의눈이라는 장애인 미술 교육 단체에서 촬영을 맡고 있었어요. 여러 복지관에서 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저는 복지관을 오가며 사진을 찍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 아인투아인이라는 유니버설 디자인 스튜디오와도 인연이 닿아 일하게 되었고요. 그 프로그램 참여자 중에 조향사님이 계셨어요. 조향사님은 중도 시각장애인이신데, 시력을 잃은 이후 현재는 안마사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왜 시각장애가 있으면 안마사나 장애 복지 쪽으로만 취업을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취업의 문이 좁을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고요. 조향사라는 꿈을 키우면서 시각장애인의 취업 선택지를 더 넓히고 싶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이후에 조향사님이 먼저 아인투아인에게 함께 향수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주셨고, 저는 그 협업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관계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진 작업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안희제:
그렇다면 이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김재아 기획자님도 함께 알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연결이 되었고, 접근성이나 장애, 몸이나 감각과 관련된 다른 전시 기획 경험도 있으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재아:
저는 어떤 장 안에서 형성되는 담론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두 분을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다른 몸을 상상하는 일이 단지 향유자에 대한 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창작의 과정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어떤 다른 세계가 열릴 수 있을지, 또 다른 협업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작년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그 프로젝트에서 현진님은 연구자로, 준범님은 자문으로 함께해 주셨어요.
안희제:
다른 몸을 상상하는 과정을 앞으로 가져오자는 점이 저와 현진님이 공유하고 있던 탐구 주제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준범님의 향이라는 후각의 작업과 현진 님의 사진 매체가 서로를 넘나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두 분의 작업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현진 님의 작업을 볼 때마다 항상 태도에 주목하게 돼요. 주변의 다른 존재들에게 계속 가닿으려는 태도와 그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인상 깊었고요. 그래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안희제:
말씀해 주시는 걸 들으면,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그 관계가 창작으로 이어지며, 또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물을 통해 다시 다른 관계를 만들고자 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의 창작 세계에 가닿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다른 감각들을 어떻게 더 폭넓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번역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이 모든 과정이 감상이나 향유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 혹은 생산자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문화예술의 과정 안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쯤에서 제가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전시 제목인 '감각 횡단'은 '감각 번역'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 단어를 먼저 다시 소개하고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각 번역'이라는 말은 제가 만들긴 했지만, 그 의미가 아주 독창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미적인 체험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이 키워드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한 사례였는데요. 대학생 때 장애인권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 폐쇄 자막을 켜고 영상을 보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폐쇄 자막에 '의미심장한 분위기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어요. 그걸 볼 때마다 청각장애인 친구들과 '도대체 의미심장한 분위기의 음악이 뭐냐'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제작 단계부터 베리어 프리를 고려했다고 하는 영화에서도 음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사용하면서 화면 한쪽에 음표 하나만 띄워두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걸로는 도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처음 생각했던 감각 번역은 조금 더 나은 폐쇄 자막이나 조금 더 나은 화면 해설은 없을까 하는 비교적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안희제 (계속):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감각 횡단'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테마를 제시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감각 번역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시면서 박현진 작가님의 작업을 통해 횡단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새롭게 제시할 수 있었는지 재아 기획자님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김재아:
맞아요. 저도 희제님의 감각 번역이라는 개념을 인터넷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이 시도가 사실 어떤 정보의 증가를 그대로 제공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시각으로 얻는 정보와 텍스트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단순히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번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석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의미가 더해지거나 누락되는 부분도 생길 수밖에 없겠죠. 저는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전시 제목을 보면 '감각'과 '횡단' 사이에 'tran-sense-latio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요.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말은 아니고, 일종의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다만 'sense'를 가운데에 놓음으로써 translation이라는 구조가 가능해지고, 감각이 다시 한국어로 등장 하면서 결국 횡단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같은 것을 등가로 생산할 수는 없지만, 변형되고 손실되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건 감상자로서 장애인이 더 많은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라는 권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접근성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 지점에서 향유자를 넘어서 생산자와 매개자의 영역, 다시 말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에도 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으려면 미적 체험의 동등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단지 더 나은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장애인이 구조적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를 전복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김재아 (계속):
번역이라는 키워드를 횡단으로 연결할 때 중요한 지점은 매체와 매체를 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폐쇄 자막이나 화면 해설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영상물을 전제로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향수와 사진, 그리고 지금 들고 계신 사탕, 여기에 QR 코드를 통해 연결되는 텍스트까지 총 네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향과 이미지가 설명되고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 사이의 횡단 과정이 번역이라는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했고, 그 이야기를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횡단은 창작자들 간의 오감을 넘나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현진님이 준범님의 향의 세계를 특별하게 느꼈다는 점이 있고, 또 현진님과 준범님이라는 두 사람이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창작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이 두 세계가 만날 때 생기는 힘이 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베이스였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 안에서는 그 횡단이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되었는데, 그 부분을 현진님이 먼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현진:
네, 처음에는 조향사님이 만드신 향을 사진으로 재현하고자 했어요. 지금 전시장에 있는 사진들에서는 총 세 가지의 향이 나고 있습니다. 이 향수들을 저희는 '촉감향' 시리즈라고 부르고 있어요. 첫 번째 향은 조향사님이 사랑하는 사람과 공원을 걸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의 온도감,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의 촉감, 풀잎의 부드러움이나 나무 벤치의 따뜻함 같은 감각들을 향으로 먼저 만드셨고, 그 향을 맡은 후 제가 사진으로 표현했습니다. 말씀해 주신 장소에 가보기도 하고요, 향의 느낌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촬영했어요. 두 번째로는 목욕할 때 몸이 물에 닿으며 느껴지는 촉촉함과 짜릿함, 입욕제를 사용할 때 빠져드는 감각을 향을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도서관이라는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책장을 넘길 때의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을 바탕으로 작업한 사진들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가까이에서 향을 맡고, 사진을 만지면서 감상하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향사님에게 사진을 설명할 때도 손을 잡고 '이건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사진이고, 뒤에는 초록색 나무가 있고, 등에는 나뭇잎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식으로 사진의 부분을 만지면서 설명을 해왔어요.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사진이라는 시각 매체를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텍스트 설명 외에 다른 방식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술관에서는 보존을 이유로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규칙이 있지만, 눈으로 감상할 수 없는 사람도 많고, 저는 사진을 시각 외의 감각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가지고 조향사님의 향을 더 물질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이미지들이에요. 필름 사진으로 작업하면서 필름 자체에 조향사 님의 향수를 묻혀서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켜서 만들어낸 우연적인 결과물이에요.
김재아:
말씀하셨던 것처럼 필름은 굉장히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을 가진 매체죠. 물질적으로 접촉하는 순간에 서로를 영원히 바꿔놓을 수밖에 없고요. 향수가 필름에 묻는 순간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관객이 사진을 만지면 지문이 남습니다. 보존의 관점에서는 훼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이 사진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때 그 위에 남아 있는 관객들의 물리적인 손길이 이 작업이 맺어온 관계의 흔적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을 대화 안으로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해 왔던 것 같습니다.
박현진:
작업 과정에서 여러 고민들을 계속 조향사님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조향사님이 관람객을 직접 만나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관람객이 사진을 보고 떠올린 키워드를 조향사님께 전달하면, 그 키워드를 사진을 해석한 향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었죠. 향수 제작에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 달 뒤에 참여자분들께 시향지 형태로 보내드리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어제 처음 진행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기도 했고, 작업 과정 자체에 큰 흥미를 보여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조향사님이 다양한 몸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다음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었고, 앞으로 남은 두 차례의 프로그램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희제:
이 작업은 연계 프로그램을 포함해 협력자를 계속 늘려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애초에 작업이 시작된 과정에서도 현진 작가님이 늘 여러 협력자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잖아요. 이 사람, 저 사람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고요. 이렇게 협력자를 늘려가며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생성되고, 그것이 또 다른 창작으로, 다시 다른 감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어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것을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감상을 넘어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라는 점이 떠오르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이 재아 님이 작성한 대체 텍스트가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설명하고 그 설명이 다시 조향사님에게, 또 다른 창작자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이 사진들이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지, 어떤 감각과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횡단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목만 보면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는 '감각 횡단'이라는 개념이 작품과 과정,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의 경험으로 구체화된다는 점이 이 전시의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6. 비평 텍스트. 안희제 (문화비평가, 인류학 연구자)
제목: 횡단적 시작: 물의를 빚는 사진들, 세계를 이끌어내는 애착
안희제 / 문화비평가, 인류학 연구자
시각, 청각, 후각, 촉각, … 감각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감각들 사이의 경계는 당연한가? 감각들은 언제나 경험이라는 형태로 뭉쳐져 복합적으로 찾아오고, 하나하나의 감각은 오히려 그러한 복합적인 감각으로서의 경험을 소통,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구분되는 것이 아닌가? 전시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향수와 사진을 매개로 후각을 시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감정과 의미가 특정한 매체를 거치며 물질이 되고, 감각들의 경계를 짓고 허무는 행위로서 소통들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소통의 시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통 가능한 세계,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내는 관계와 애착에 관한 이야기다.
분리: 감각의 구성
특정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조향사 김준범은 후각적 방식을 선택한다. 아니, 정확히는 특정한 분위기 혹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촉각을 선택하고, 그것을 온도, 경도(물성), 움직임으로 세 분화하여 촉각을 다시금 나눈다. 그리고 그것들이 특정하게 겹치는 지점, 이를테면 따뜻하고 부드럽고 활발한 촉각들이 겹친 감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을 만한 상황을 찾아낸다. 그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후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선별해서 전달 대상으로 삼는다. 향수라는 매체가 전달할 기억, 소통의 내용을 결정한다. 어떤 경험에서 시각적인 것과 후각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은 모두 한데 섞여 있으나,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수단을 선택해야 하고, 그 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은 그것이 운반할 수 있는 형태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이때 우리는 그 수단에 내재한 제약에 따라 경험을 분석하고 그 안의 겹들을 분리한다. 하나하나의 감각의 이름은 바로 그러한 겹들을 가리킨다.
‘달걀’이라는 하나일 수 있었던 것이 필요와 목적에 따라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될 수 있듯, 경계는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만들어진다. 분리(separation)는 동사이고, 활동이다. 분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주어진 구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며, 분리 자체를 하나의 방법(method)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분리는 원래 존재하는 두 대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 혹은 경험 안에서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대상들을 만들어내는 일, 즉 내부-작용 (intra-action)이다. 소통을 위해 현상을 안으로부터 잘라내는 분리의 과정은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감각의 구성은 소통이라는 행위와 소통 양식으로서의 매체,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축들이 이루어내는 경험 혹은 기억이라는 한 덩어리 안에서의 내부-작용이다.
횡단: 반영이 아닌 번역의 양태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경험 안에서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구성하는 작업으로서의 분리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이 경험을 나는 왜 전달하려 하는가? 그것은 왜 중요하며, 그것의 어떤 측면이 중요한가?(Why does it matter, and what aspect of it matters?) 경험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경험을 분석, 즉 나누어(分) 쪼개야(析) 한다. 경험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한 분석 과정으로서의 해석은 따라서 그 자체로 그 경험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 사이의 분리를 촉구하며, 이 분리는 사람이 부여하는 의미뿐 아니라 전달의 매체와 도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해석은 물질적인 대상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경험을 특정한 물질적인 대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감각들을 구성해낸다.
재현(representation)이 특정한 해석과 변형을 거치면서도 어떤 상황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가까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다시-보여주기(re-presentation)라는 점에서, 재현은 불가피한 변형을 전제하면서도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결과 사이의 일치, 혹은 반영(re-flection)으로서의 재현의 결과를 추구한다. 김준범이 향을 통해 수행하는 기억의 후각적 재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반영을 추구하면서도 후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향이라는 매체에 여러 감각을 모두 실어날라서 비슷한 경험을 전달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여러 감각을 하나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데서 발생하는 차이다. 오직 향만으로 그는 분위기, 테이블의 질감, 당시의 음악과 사람들의 소음 같은 것들의 총체로서의 환경을 전달해야 하며, 여기서 반영은 의도에 포함될지언정 (결코 충분히 달성될 수 없으므로) 유일하게 추구될 수는 없는 목표가 된다. 여기서 재현은 단순한 모방도, 현실의 반영도 아닌, 대상과 결과, 만드는 이와 경험하는 이 모두가 약간씩의 변형을 겪는 재해석과 재창조다. 이때 재현은 반영을 추구하는 번역의 한 유형으로 재개념화될 수 있다.
이제 핵심은 확장이다. 경험과 감각, 감각과 감각이 향을 매개로 넘나들기를 반복하는 쌍방향의 과정, 즉 감각 횡단을 통해서만 어떤 경험은 여러 감각으로 되살아나서 전달되고, 소통될 수 있게 된다. 재현이 일치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다면, 횡단은 확장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다. 다시는 그대로 살아날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이 감각의 분리와 감각 사이의 오감을 통해 구성된 향수를 매개로, 그것이 각자의 코 점막의 후각 세포에 접촉하여 구성된 향으로 전달된다. 의도와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러나 배합물 속 향료들의 비율이나 숙성의 시간 등의 화학적 과정에 의해 의도대로 나오지는 않는, 그럼에도 우연히 발견되는 비율을 통해 향은 만들어진다. 김준범이라는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재현한 처음 맡는 향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어떤 느낌, ‘아, 뭔지 알 것 같아요!’로 느껴질 때, 겪어 본 적 없는 타인의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내가 이미 겪어 본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향은 감각의 데자뷔를 생산한다.
박현진은 이 지점에 두 경로로 개입하여 또 다른 재현을 시도한다. 하나는 김준범이 재현하고자 한 경험과 기억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연출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준범이 만들어낸 향료를 현상 과정에 활용해서 그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선별하고 인화하는 것이다. 즉, 그는 사진을 제작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 각각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결과를 공유하면서, 반영으로서의 번역과 횡단으로서의 번역을 시도한다. 필름 사진을 인화한다는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지만, 재현의 대상을 공유하는 경로에서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사물들의 배치가, 재현의 결과를 공유하는 경로에서는 향료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이미지를 현상하기 위한 필름의 숙성이 이루어진다. 경험은 향수를 매개로 촉각과 후각이 되고, 그것은 다시 필름을 매개로 시각이 된다.
여기서 필름의 숙성은 사진의 현상 과정 자체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반복될 수 없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박현진은 사진을 촬영하는, 즉 필름의 감광 물질에 빛이 접촉하도록 노출되는 셔터의 순간 이후에, 그러한 노출을 자국으로 보존하는 필름을 김준범의 향수에 담근다. 원래 바로 현상액에 적셔졌어야 할 필름은 향수를 입고, 코 점막에 묻었으면 향이 되었을 향수는 필름의 감광물질과 만나 특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필름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빛을 찍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화했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이미지가 되었을 필름의 잠상은 향료로 인해 변형된다. 여기서 향수(perfume)는 ‘향(scent)’ 대신 ‘상(image)’을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현상 액이나 정지액과 같이 상을 생산하는 장치로서 하나의 ‘용액’으로 작동한다. 시각을 후각으로 번역한 것이 또 다른 시각을 생산한다. 시각과 후각은 향수와 필름 사진을 매개로 넘나들며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표현하는 일, 나아가 경험 혹은 기억을 서로 다른 하나씩의 감각만으로 표현할 때 생기는 차이들, 즉 감각들 사이의 경계의 필연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우연: 물의를 빚는 골치아픈 소통
여기서 감각들 사이의 넘나듦, 즉 감각 횡단이 경계의 필연성에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향료들의 배합을 통해 생산된 향으로도, 필름의 숙성 과정을 거쳐 생산된 상으로도,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그것이 재현하고자 한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향료들의 배합물과 감광한 필름이 공유하는 숙성이라는 화학적 과정에 내재한 우연성 때문이다. 숙성을 거쳐 제작된 향수와 사진은 각각 레시피와 디지털화를 통해 복제 및 반복 생산이 가능해지지만, 숙성은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도록 만든다.
향수를 만들 때 숙성이 필수적인 과정인 반면, 필름의 현상에서 향수에 필름을 숙성시키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이때 박현진은 김준범의 향수가 매개하는 경험과 향을 필름 사진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달하고자 숙성을 필수 과정으로 만듦으로써 숙성에서 비롯되는 우연성을 사진 제작 과정에 기입한다. 한 번 사용한 필름을 재사용할 수도 없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화학 작용 전체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상은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 이때 박현진은 기술 복제 가능 시대를 열어젖힌 사진을 아우라의 유일성 대신 필름과 향료의 물질성과 우연성에 기대어 반복의 불가능성 위에 다시 정초시키려는 듯하다. 여기서 사진은 한눈에 파악되는 투명한 반영적 소통이 아니라, 보기만 해서는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할 수 없는 불투명한, 골치 아픈(troubling) 소통의 매체가 된다.
감각의 분리와 경계 짓기는 애초에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나의 경험은 내부로부터 여러 감각으로 분리되어 특정한 감각만으로 소통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이렇게 소통을 목표로 구성된 경계는 언제나 다른 소통을 폐제한다(foreclose). 사진은 시각만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고, 향수는 후각만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는, 감각의 일치를 당연하게 전제하는 소통은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변형하여 이루어지는 소통을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짓는다. 감각 번역은 바로 그 소통을 확장하고 재개하려는 시도이며, 감각 횡단이란 어떤 소통을 가로막는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재편하는 과정이다. 우연성을 내포하는 숙성의 과정에서 향수에 부여된 특정한 기억과 감정, 혹은 경험이라는 의미는 시각적 소통을 위해 필름 사진이라는 사물로 빚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의 결과일 뿐 아니라, 또 다른 번역의 계기라는 점에서 또한 횡단이다. 횡단은 경계를 파괴하는 것이기보다 만들어진 경계들을 허물고 조금 다른 모양으로 다시 짓는 작업, 즉 새로운 분리를 위해 반복되는 내부-작용이다. 박현진의 사진은 기획자 김재아에 의해 대체텍스트로, 즉 시각적 연상을 가능하게 하는 글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대체텍스트는 작품에 대한 설명의 역할이 아니라,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하나의 묘사를 제공할 뿐이다. 박현진의 필름 사진은 전시 과정 중에 있는 두 번의 관객 참여 프로그램에서 관객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묘사되어 언어로 김준범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향수로 만들어진다.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시각에서 후각으로의 횡단이 이번에는 관객들의 말들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의미가 사물을 만들어내고, 사물은 의미를 담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름 사진은 입방아에 오르며 감각 사이의 경계에 관한 골치아픈 대화의 장이 된다. 그것은 물의를 빚는다. 우연성 안에서 사물과 의미가 얽히며 새로운 이야기와 물질을 낳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필름 사진이 중요한 이유는 필름 사진이 물의를 빚기 때문이다(film photography matters because film photography matters).
애착: 세계를 이끌어내는 힘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확장성을 추구하는 감각 번역에 내재한 우연성을 체현하는 과정, 즉 감각 번역에 대한 메타비평이다. 확장성을 위해서는 하나의 감각에 머무를 수도 없고, 횡단의 과정에서 변형은 쌍방향적이며, 번역은 의도한 대로 전달되지 않으므로 골치아프다. 때로 전달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나 노력의 흔적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전시에서 어떤 세계가 이끌려 나온다는 사실이다. 감각들 사이를 넘나들면서, 가능하다고 미리 생각해 본 적 없는 소통이 잠시나마 이루어지는 세계가.
박현진은 이전의 작업 <복합감각>(2022)에서 상이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별을 겪은 이들의 경험과 기억이 담긴 사물을 그들의 몸에 붙여 사진으로 남겼다. 박현진에게 할아버지의 후천적인 신체 손상과 장애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그의 몸에 붙어 있던 사물들을 더욱 상기하게 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착은 사람들의 몸과 사물을 이별과 거기서 남은 감정, 그것과의 직면이라는 의미와 결합하여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했다. 장애를 중심으로 몸의 취약성에 관심을 둔 박현진의 작업은 사회적 의제나 정의(justice)로서 장애인 접근성에 접근 한 것보다는 할아버지라는 친밀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장애나 접근성에 관한 정치적 이해와 무관하게 접근에 관한 욕구를 이해하는 가까운 관계로부터 만들어지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접근 친밀성(access intimacy)은 이처럼 접근성에 관한 (명시적이거나 명시적이지 않은) 이해, 그리고 실제 접근성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친밀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애착은 친밀성 혹은 친밀한 관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감각과 경험을 소통하려 아등바등” 하면서 만들어지는 서로에 대한 접근성의 동력이 된다.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에서 애착은 횡단으로서의 소통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김준범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된 이 사진 작업은 후각과 시각 사이의 횡단을 통해 기존에 쉽게 예측되지 못한 방식의 소통을 시도한다. 친밀한 사람에 대한 애착은 그와의 소통뿐 아니라 그의 감각을 다른 이들에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넓게 소통하려는 시도로 나아간다. 향수에 담긴 경험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작업, 향수에 필름을 숙성하여 우연한 이미지들을 인화하는 작업으로 감각과 감각의 소통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는 전시 공간에서 사탕을 매개로 한 감각들 사이의 소통으로도 나타난다. 맛이 밍밍한 사진 사탕의 어설픈 단맛을 혀로 느끼면서 사진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향을 맡으려 하면 극단적으로 시야를 좁히면서 사진을 오히려 자세히 감상하게 된다. 사탕을 상과 향과 맛, 눈과 코와 혀, 시각과 후각과 미각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매체로 삼는 전략은 감각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이와 관계 맺기 위한
“절박한 창의성”을 보여준다. 감각의 소통을 확장하여 접근성의 여러 양태를 실험하고 제작하는 박현진은 기본적으로 시각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진 매체의 제약 안에서, 향수로부터 생성된 이미지라는, 제약을 벗어나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사진을 인화하고 사탕을 만들고 전시 공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하는 등의 손짓 하나하나를 통해 감각들의 넘나듦이 가능한 세계, 그러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세계는 전시를 통해 생산된다. 마치 그런 세계가 이미 존재했던 것처럼.
감각과 감각을 오가면서도 온전히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자꾸만 불가능과 실패를 상상하게 된다. 감각들의 보완 관계와 종합만으로 ‘온전한’ 경험을 상상하는 문화에서 감각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어떤 감각으로 틀지워진 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전달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만 같이. 감각 사이의 전이가 이뤄지면 그건 더는 ‘온전한’ 경험이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아무리 애써도 다가갈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재현이나 번역의 ‘윤리’로도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러한 불가능과 실패, 그것에 대한 인정은 그것을 체념의 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에서만 윤리적일 수 있다. 불가능과 실패를 넘어선 세계를 이끌어내는 한에서만 그것은 윤리적일 수 있다. 기존의 분리에 질문을 던지고 안으로부터 다른 생성의 선들을 긋는 한에서만, 그것은 윤리적일 수 있다. 우연성은 불가능성이 아니다. 근원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애착에서 한계를 갱신할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불가능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은 우리가 겪어 온 무수한 실패들에 대한 재인식(re-cognition)이 아니라 어떤 시작이어야 한다. 기존의 실패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어떤 틈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시작. 횡단의 시작. 사진들이 물의를 빚는 것, 그럼으로써 의미, 의지, 마음이 실제로 세계를 이끌어내는 것, 사람들의 말들이 모여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그것이 다시금 또 다른 횡단의 계기가 되는 것의 근원에는 애착이 담긴 절박한 창의성이 있다. 경험이 특정한 매체를 통해 감각들로 쪼개어지며 만들어진 경계와 한계는 애착을 통해 찢어진다.
주디스 버틀러는 정신을 자아가 타자의 침투에 의해 찢어짐으로써만 가능해지는 공간으로 개념화하면서 그 과정에 정신적 시작(psychic incep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신은 타자의 침투를 통해 시작되고, 그것은 또한 어떤 개인이 정신적 존재가 되는 과정이며, 그런 점에서 이것은 '정신의 시작'이 아닌 '정신적 시작'이다. 한 개인이 타자의 침투에 의해서만 정신적 존재가 되듯, 소통과 감각은 타자의 침투에 의해서만 횡단적 과정이 된다. 이 전시에서 타자에 대한 애착은 기존의 소통 양식에 충분히 담기지 않아서 생성되는 잔여가 다른 소통을 향한 욕망이 되고, 이것이 경험에 침투하여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횡단을 시작한다. 횡단은 애착을 매개로 침투하는 타자에 의해서만 시작되고, 소통은 감각들 사이를 횡단하는 과정이 된다. 소통과 감각의 횡단적 시작(translative inception). 어떤 소통을 향한 마음에서 아등바등 횡단이 시작된다. 가능할지 모를, 기필코 이뤄내고 싶은 소통에 대한 애착이 나의 눈과 손과 코를 잡아당긴다. 그렇게 시작되는 말과 손짓들이, 향수와 사진들이 물의를 빚는다. 세계를 이끌어낸다. 세계가 시작된다. 아니, 있었다. 이미 그곳에.
7. 비평 텍스트. 박예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닿는 세계, 더듬는 시간
박현진의 사진은 언제나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정은 홀로 머물지 않는다.
그는 마음의 떨림을 타인에게 건네는 방법을 탐색하며, 감정을 감각으로, 감각을 다시 관계로 옮긴다.
감정이 감각으로 확장될 때 작업은 고유한 형식을 획득하고, 그 형식은 서로를 이어주는 하나의 언어가 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개인적 정서의 기록이 아닌, 감정이 타자에게 건네지는 ‘감응의 통로’로서의 이미지다.
초기작업인 <복합감각>(2022)과 <숨氣>(2023)은 이러한 감응의 구조를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
<복합감각>에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 이후 상실의 감정을 사변적으로 다루는 대신, 신체와 사물의 접촉을 통해 부재한 존재를 다시 ‘만지는’ 행위를 택했다. 떠난 이의 물건을 몸에 부착하고 그 질감을 감각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은 시각 이전에 물질적 접촉의 기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후 <숨氣>에서는 ‘숨기’와 ‘숨쉬기’라는 행위를 매개로 불안과 평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사유하며, 감정이 머무는 순간을 ‘함께 있는 시간’으로 기록한다.
이러한 여정은 <Perfumegraphy>(2024–2025)로 이어진다. 이 작업은 감정의 촉각적 회로가 비시각 감각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자, ‘감각의 번역’이라는 불가능한 과제에 대한 탐구다.
박현진은 시각장애인 조향사와의 협업을 통해 ‘빛으로 쓴 기록(Photography)’을 ‘향으로 쓴 감각의 기록(Perfumegraphy)’으로 변주하며, 사진을 시각 중심의 구조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이는 감상을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옮기는 ‘번역적 사건’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아날로그 컬러 필름에 조향사의 향을 직접 개입시키고, 일정 시간 숙성한 뒤 암실에서 현상한다.
빛, 화학, 향이라는 이질적 물질이 충돌하며 생성하는 우발적 변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시각 중심의 재현이 아니라, 향이 화학적 잔여로 침투한 물질적 사건으로 남는다. 관객은 이를 ‘보는’ 대신 ‘만지고 맡는’ 행위를 통해 ‘감각하는’ 수행적 만남을 경험한다.
이 협업은 동시에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시각을 가진 작가와 비시각적 감각을 가진 조향사 사이에는 비대칭적 권력과 인식의 경계가 존재한다. 후각적 경험을 시각 이미지로 ‘번역’하는 행위는 타자의 감각을 시각적 언어 속에 포획할 위험을 내포한다. 만약 이 시도가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후각적 경험을 '미학적으로 봉합'하는 순간, 조향사의 내밀한 경험은 작가의 매체적 실험을 위한 재료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나아가 이는 관람자에게 낭만적으로 포장된 작품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박현진은 이러한 긴장을 인식하며, 필름과 암실이라는 매체적 주도권을 조향사에게 일시적으로 건넨다. 향을 현상 과정에 직접 개입시켜 감각의 중심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향은 필름이라는 시각 매체에 직접 침투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능동적 주체로 작용하며, 조향사의 내밀한 감각 세계가 시각적 흔적으로 응고된다. 그러나 필름 현상 과정을 거치며 타자의 경험이 결국 작가의 시각적 언어로 돌아오는 순간, 감각 간 대칭 가능성은 매체적 한계에 부딪혀 흔들린다. 그럼에도 필름에 남은 흔적은 의도적 오류나 결함을 통한 '글리치(Glitch)'의 미학으로 읽을 수 있다. 향과 빛의 화학적 반응이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파열은 감각의 표준성이 균열되는 지점이자, 타자성에 닿지 못하는 시간의 등락이 드러나는 자리다. 이 불완전한 잔여는 <Perfumegraphy>의 미학적 정당성을 구성하며 번역의 불가능성을 증언한다.
박현진의 시간은 언제나 느리고 비대칭적이다. 빛이 필름에 닿는 시간, 향이 이미지로 치환되는 시간, 감정이 관계로 변환되는 시간은 모두 서로 다른 리듬을 지닌다. 이러한 지연은 앨리슨 케이퍼가 말한 ‘크립 타임(Crip Time, 불구의 시간)’처럼, 각기 다른 신체가 감응하는 비동시적 시간과 닮아 있다. 박현진은 이 어긋남과 지연 속에서 완벽한 이해나 일치보다, 어긋남 자체를 관계의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이미지 뒤에 존재하는 번역 불가능성과 타자의 내밀한 고유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Perfumegraphy> 는 사진 매체 연구에 새로운 탐구 방향을 제시한다. 사진은 더 이상 찰나를 붙잡는 도구가 아니라 비물질적 감각을 물질적 흔적으로 변환시키는 감각 확장 매체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시각 중심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듦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 '보이게 만드는' 행위 자체가 시각 매체의 본질적 한계이자, 타자의 고유한 비시각적 세계를 재단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1995)의 관점에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결국 '자아로 회귀된 타자'로서만 그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타자를 타자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아의 관점에서 공감 가능한 모습으로 만들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타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미지의 비정형성은 바로 이 번역의 실패, 즉 타자의 세계를 완전히 시각화할 수 없다는 겸허한 고백이어야 한다. 이에 그의 시각적 이미지는 조향사의 세계로 진입하는 '입구'가 아니라, 맞닿는 '경계'를 확인하는 장치여야 함을 시사한다.
<Perfumegraphy>의 추상적 흔적은 시각적으로 해석되기 어렵지만, 감각적으로는 깊게 남는다. 그 흔적은 후각과 시각이 서로를 번역하려다 남긴 화학적 잔여물이자, 감각의 불협화음이 남긴 지문(指紋) 같은 자국이다. 이 불완전한 흔적이야말로 박현진이 말하는 ‘번역을 위한 닿음’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는 타인의 감각을 더듬는 손길이며,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향하는 마음의 궤적이다.
빛과 향, 감정과 시간이 스치며 남긴 잔향 속에서 우리는 닿을 수 없기에 더욱 절실한 관계의 긴장을 마주한다. ‘나’와 ‘타자’는 완전히 합쳐지지도, 분리되지도 않은 채 서로의 감각에 응답하며 머문다.
그 속에서 감정과 감각은 서로를 스치며, 끝내 하나로 합쳐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조용히 만들어낸다.
8. 연계 프로그램 〈하이픈 되기: 조향사와의 만남〉 설명
〈하이픈 되기: 조향사와의 만남〉은 전시의 출발점이 된 향을 만든 아인투아인의 조향사 김준범과 함께 사진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다. 관객은 조향사에게 사진을 보고 어떤 향이 떠오르는지 전하고, 조향사는 관객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을 숙성한 뒤 관객에게 돌려보냅니다. 〈하이픈 되기〉는 다른 감각이 연결되는 가능성의 공간에 관객을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우연한 연루는 몇 달의 시간을 횡단하여 바깥의 몸에 닿습니다.
프로그램 참여 방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공간에 머무는 사람에게 알려주세요.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며 사진을 맡아보고 만져보세요.
조향사에게 다가가 간단히 당신을 소개해주세요.
전시의 감상을 말해주세요. 아래와 같은 요소를 포함해도 좋고, 포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진 하나하나가 어떤 이미지인지, 작품에서 어떤 것을 연상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관람하며 어떤 향을 상상했는지 알려주세요.
궁금한 것을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전시가 끝난 뒤 조향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향을 만듭니다.
몇 달의 숙성 시간을 거친 향의 시향지를 받아보고 싶다면 메일 주소를 적어주세요.
이 전시를 잊을 때쯤 당신의 번역을 다시 해석한 조향사의 향을 만나게 됩니다.
9. 마무리 안내
지금까지 박현진 개인전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도록의 전체 내용을 안내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