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ial projects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2026
Gamgak tran-sense-lation Hoengdan

어떤 순간에 향은 사진이 된다. 전시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빛과 물질이 만들어내는 의도적이거나 우연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 순간에 다가간다. 박현진은 지난 2년 간 포용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스튜디오 아인투아인과 중도 시각장애인 조향사가 향수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뒤 다른 감각이 열렸다는 조향사의 이야기는 박현진이 향으로 구현된 세계를 사진의 언어로 번역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개인의 감각이 설정하는 고유한 우주를 횡단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전시의 이름인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이 과정을 기호화한 것이다. 번역(translation)의 과정이 출발과 도착 언어 사이를 매개하고 감각(sense)은 그 안에서 작동한다. 전시명에 두 가지 언어가 공존하는 것처럼 사진, 향, 텍스트는 서로를 지시하고 무언가를 탈락시키거나 더하면서 서로에게 기울어진다. 이곳에서 여러 지지체를 입은 모든 사진은 직접 만지고 접촉할 수 있는 존재이다.


전시는 사진이라는 매체와 서로 다른 신체가 감각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새로 진입하는 이들이 겪게 될 경험 사이를 천천히 진동한다. 박현진은 향을 두 갈래의 사진으로 번역한다. 첫 번째 시리즈의 작품 제목은 특정한 분위기를 가리키는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의미를 짐작하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불러낼 것이다. 사진의 서사적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깨끗한 셔츠를 입은 뒷모습 위에 비치는 나뭇잎 그림자, 나무 탁자 위 지구본, 습기가 찬 매끄러운 표면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담은 사진들은 각기 다른 세 개의 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이들이 환기하는 기억이나 연상하는 이야기는 그곳으로 회귀하지 않고 어딘가로 미끄러진다. 사진은 이미지를 통해 사후적으로 대상을 재구성하지만 그와 같아질 수는 없다. 더구나 여기서 지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조향사의 내면에서 축조된 세계이다.


두 번째 시리즈 〈Perfumegraphy〉(2024–2025)는 그 사이에서 희미해지는 연결을 붙잡는다. 대상을 촬영한 첫 번째 사진들 가까이 부드럽고 추상적인 흐름이 드러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창문 가까이 걸린 사진, 벽을 덮은 사진, 풀려나오며 안쪽 방을 채우는 사진이 놓인 장소는 순서대로 점차 어두워진다. 각 사진은 인접한 첫 번째 시리즈의 사진이 가리키는 향을 상상하게 한다. 박현진은 조향사의 향수에 필름 매거진을 넣어 일정 시간 숙성함으로써 향을 개입시켰다. 그 결과 손상된 필름에는 우연적인 색과 모양이 드러나게 되었다. 작가는 “우발적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감광된 필름은 향을 내는 물질에 접촉하여 화학적으로 변화했다. 이때 향이 필름에 하는 일은 작가의 시도와 맞닿아 있다. 어떤 만남은 시간이 걸리고 연루된 이들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흔적이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은 곧 타인과 ‘나’의 감각 사이의 간극을 경유하여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를 생성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상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번역의 과정에서 창출되는 것은 지시 대상을 온전히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놓치고 더하면서 더 많은 것을 말하게 된다. 때로 흔적은 비가역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찢고 나오거나 틈새로 빠지는, 절대로 보편적인 단어들 안에 포착될 수 없는 경험과 이미지로 전환된다.


박현진은 우회하거나 건너뛸 수도 있을 문제들을 쥐고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건다. 동시에 이들을 충실하게 고민하여 자신 안에 맺히는 상으로 옮겨놓고자 한다. “여전히 사진 한 장의 힘을 믿는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닿을 수 있는 사진을 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로 짐작하건대 이는 닿기를 기원하는 끈질긴 다가감에 가깝다. 중심화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른 존재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들뢰즈가 이야기한 ‘-되기(devenir)’는 스스로를 그 존재의 자리에 대입해서 동일시 하는 일이기보다 관계의 형식들 안에서 창발할 수도 있을 새로운 항을 경유하여 접속하는 일에 가깝다.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와 이해관계 속에서 어떤 지대는 의도나 목적 없이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는 뜻밖의 관계이거나 감정일 수도, 때로는 사진 작품일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것에 의지한다.


감각에서 출발해서 횡단까지 도달하는 사이에는 transelation과 sense가 하이픈(-)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감각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릅쓰고 기꺼이 하이픈이 ‘-되기’로 한다. 혹 공간에서 만난다면 당신이 사진을 어떻게 관람했는지, 전시에 언뜻 등장하는 향을 어떻게 목격했는지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만지고 맡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지대에 다가서는 과정이다.




박현진 개인전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2025.11.15.(토) – 2025.12.7.(일) 
13:00 – 19:00 (월요일 휴관)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 연계 토크 
〈횡단적 시작: 시각과 후각 사이를 잇는 사진들〉 

✲ 연계 프로그램 
〈하이픈 되기: 조향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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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재아
비평 박예원
토크 안희제
디자인 이석현 
협력 아인투아인
사진사탕 설치 해민해


주최/주관 김재아, 박현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2025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돌 빛 벽≫, 2025

We made the tools to bring wet words home



“미시 세계로 들어갈수록,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다. 결국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우리 자신의 희미한 시각 때문에 발생한다.”
–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시적 차원에서 시간은 무수히 많은 방향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다. 거시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의 적층이나 빛의 이동을 구획하는 개념으로 수많은 시간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시야에서 인간, 돌, 나무처럼 명확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로, 이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사건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단일한 시간선 위에서 내려온다면 물질과 사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땅에 뿌리 내린 나무 역시 사건이다. 나무가 인간에게 기우는 순간이 독립적인 물질일 수도 있다. 인간과 나무 그 자체보다, 나무와 인간이 가까워지는 짧은 시간이 더 영속적일 수 있다. 사건이 물질이고 물질이 사건일 때, 작은 세계에서 어떤 물질/사건은 다른 사건/물질의 이전과 이후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돌탑을 쌓듯 시간은 층층이 중첩된다.

《돌 빛 벽》은 각자의 세계를 탐구하는 세 작가의 교차하는 시간성을 담는다. 김선영, 정은별, 박형진은 동양화를 통과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을 감각한다. 각 세계 안에서 시간은 어긋나고, 모순을 응시하며 미끄러지다 다시 작은 단위로 나뉘고 모인다. 김선영은 단일 주체라는 환상 내부에서 균열을 포착한다. 김선영의 화면 안에서 발견되는 어긋난 형태와 단차는 같은 세계 안에 공존하는 조각난 시간들을 지시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종이인 장지의 물질성은 분리되고 겹치지만 결코 하나의 물질로 돌아가지 않아 시간의 차이가 축적되는 표면으로서 지지체가 된다. 아주 쨍한 빛이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계속 흐르는 그림 위에 막이 얇게 덮이듯이, 확실해 보이는 현재 위에 알 수 없는 현재가 포개어진다.

정은별이 소환하는 파열의 순간 역시 동시에 여러 가지의 다른 가능성을 가진 잠재적 시간이다. 정은별은 사소한 이야기의 수많은 미래들을 내러티브적으로 구상하며 입체나 평면의 방식으로 ‘다음 순간’을 옮겨 놓는다. 그의 회화는 실재하는 물질(사건)에서 빌려 왔거나 재구성된 조형을 통해, 예기치 못한 진행 중간의 분기를 포집한다. 정은별의 비선형적 미시 서사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면서 화면을 벗어나고자 하는 동력을 끊임없이 확장한다. 이들은 모여서 서로의 움직임을 지시하기도 하고 익숙한 방식과는 다르게 벽에서 띄워져 우리의 앞까지 직립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들의 필연적 연약함은 어떤 사건/물질이 발생하기/존재하기 직전의 불안한 상태를 드러낸다. 사소해 보이도록 정교하게 설정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계속 관객의 시선 바깥으로 이동한다.

정은별의 시간이 분열 직전의 위태로운 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면, 박형진의 시간은 연속되는 사건을 고유한 단위로 환원하여 물질로 만드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촘촘하게 쌓인다. 박형진은 도시 재개발 예정지에서 관찰한 호두나무의 생장과 그 변화의 기록을 색과 밀도로 옮긴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동하는 빛과 색의 변화,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무의 움직임은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틀 안에서는 지나가는 사건이지만, 독립적인 미시 세계로서 박형진의 작은 격자 하나 하나는 연속되는 현재에서 실재하는 물질로 변화를 포착한다. 세 명의 작가가 구축한 시간성과 언어는 겹겹이 쌓인 종이와 동양화의 형식 위에서 실현되며,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미시적 시간들은 강력한 관찰자를 얻는다. 이때 작품은 보이지 않는 흐름을 포착하는 지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세계는 평탄하게 뻗어있는 격자의 체스판보다는 오히려 몇 겹이 켜켜이 쌓이고 엉켜있는 그물이다. 우리는 계속 출렁이는 그물 한복판에서 서로를 비껴간다. 원하는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숨 막히게 느리게 감각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선형적인 시간선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한없이 가까워지는 사건이 생길 때, 시간은 정지하기도 한다. 《돌 빛 벽》은 쌓이고 흐르고 개념 위에서 쪼개지는 시간이 잠깐 만나는 때를 목격한다. 관찰자의 눈이 닿을 때 미시 세계의 시간은 분열을 멈추고, 작품은 시간들이 서로를 참조하고 비추는 통로로 기능한다. 스스로를 돌처럼 단일하고 변함없는 존재로 여기는 우리는 속도만을 가지고 쏟아지는 빛일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지금의 직후에, 기다림의 미세한 두께를 가진 벽 위에 서 있다.
(글. 김재아)
2025.05.29.(목) - 06.11.(수) 10:00-19:00

예술 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 작가: 김선영, 박형진, 정은별
· 기획: 김재아, 전혜수
· 그래픽 디자인: 예술공간 [:틈]
· 주최·주관: 예술공간 [:틈]





≪우리는 젖은 단어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2025
We made the tools to bring wet words home


그런데 보세요, 지금, 저 바다 멀리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는군요.
간혹 내가 형체를 상실한 물과 같다고 느낄 때,
나는 할머니의 가방 안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배수아, 『뱀과 물』, 2017)

최초의 이야기는 물이 담긴 가방에서 출발했다. 어슐러 K. 르 귄은 엘리자베스 피셔의 인류학적 이론을 빌려 예술의 기원을 가방(carrier bag)으로 상상했다. 인류의 시작을 떠올릴 때 우리는 돌칼이나 막대기와 같은 파괴의 수단을 연상하지만, 르 귄이 주목한 것은 안이 빈 통이나 움푹 패인 그릇처럼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도구였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바닷가에서 채취한 해조류, 곡물이나 잎사귀를 가방에 넣어 안전한 장소로 돌아왔다. 그들이 담아온 음식과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나누면서 연대에 기반한 관계가 희미하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돌칼이 쓰는 수직적이고 선형적인 역사와 달리, 그릇 주변에 모이는 이야기는 산발적으로 확장된다. 가방 안의 단어는 바다 안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존재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발레리 티 리의 세계는 다양한 이야기와 시간이 교차하는 바다로 뻗어 있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 기록되는 말과 지워지는 말의 명확한 경계를 문지르며, 억압되어 온 주체들의 웅얼거림과 속삭임, 피어나오는 이야기들을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재료와 가변적 설치로 포착해 왔다. 바다를 맞닥뜨릴 때 느끼는 대양감(oceanic feeling)은 ‘내’가 세상 바깥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아득한 감각이다. 그러나 동시에 에리카 발솜의 말처럼, 바다는 지극히 친밀하고 미시적인 이야기가 흐르는 구체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어떤 바다는 정해진 때에 맞추어 열리고 닫힌다. 어떤 바다는 품고 있는 이들에게 비밀을 공유한다.

전시는 거대한 바다에 접근하는 내밀한 통로에 가깝다. 서로를 가로지르며 바다에서 자라나는 몸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붉은 수체(水體)〉(2025)의 관은 양식장에서 사용되다 폐기된 호스로, 말린 우뭇가사리로 덧대어져 다시 통로의 형태를 되찾는다. 자연을 활용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호스의 플라스틱은 자연물인 해조류의 물성과 낯선 빛을 머금으면서, 아주 오랫동안 바다에 속한 존재로 현현한다. 빛을 투과시켜 그림자로 흔적을 남기는 〈나의 몸은 물의 기억을 담고 있다〉(2025) 역시 무언가를 포집하는 도구인 그물과 바다에서 태어난 존재의 경계를 흐린다.

〈붉은 몸〉(2023-2025)에서 아이슬란드와 한국의 동해안에서 채집된 바다의 소리와 발레리 티 리의 목소리는 공간과 시간을 건너 두 바다를 겹쳐 놓는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2024년 한국에서 리서치를 시작하며 머물고 있던 네덜란드의 바다와 부산의 바다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다. 바다는 간척과 개간의 대상인 한편, 수집과 삶의 장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바다는 전시가 놓인 맥락을 다르게 구성한다. 전시의 제목 ‘우리는 젖은 단어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와 ‘We made the tools to bring wet words home’은 각각 집으로 돌아온다는 귀환의 감각과 도구를 만드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며 거울처럼 작동한다. 언어의 간극은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를 경유해 지속적으로 다른 위치의 통로를 만드는 작가의 실천을 환기시킨다.

바다를 통과해 흐르는 이야기를 들을 때, 세계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무한함 안에서 주체의 존재가 사라지는 막막함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존재와 끊을 수 없이 이어져 있다는 결속감에 가까울 것이다. 위상수학에서 손잡이가 달린 컵과 액체를 옮기는 수관은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는 동일한 형상(isotope)이다. 언어와 의미를 만들고 뱉는 인간의 몸 역시 마찬가지로 입과 항문으로 이어진 통로의 위상을 가진다. 통로를 뒤집으면 바깥은 안이, 안은 바깥이 된다. 깊숙한 안쪽처럼 느껴지는 내장에서 발화되는 언어는 우리를 둘러싼 피부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담고, 머금고, 옮기는 일, 컴컴한 통로를 지나 어딘가로 연결되는 일은 결국 같은 것이다. 《우리는 젖은 단어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는 바다로 이동하는 축축한 포탈과 같다. 통로, 컵, 우리 몸의 안과 바깥은 물로 가득하다.  
(글. 김재아)

2025. 05. 17. - 05. 27.
예술 공간 [:틈], Seoul

작가 | 발레리 티 리 
기획 | 김재아 
그래픽 디자인 | 유혜진 
주최/주관 | 예술공간 [:틈] 


≪비무대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며≫, 2024
Destaged Zone: To Reveal, Cross, and Flip


“본 전시는 접근성 실험이나 시도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공연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 곳에서 창작자와 관객이 감각하는 모든 요소가 연극 〈달아나다〉의 본 공연입니다.”
- 〈달아나다〉(2024) 중에서


무대는 높이 있다.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 디뎌야 하는 턱은 장벽이기도 하다. 전시 《비무대지대》는 완벽하고 매끄러운 무대를 위해 가려진 것들을 드러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뒤집는다. 예술의 영역에서 접근성(accessibility)1)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쉽게 도구화된다. 《비무대지대》를 기획한 "접근성" 리서치랩은 작품의 완성도나 비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미루어지는 접근성을 바로 지금, 여기로 가져오고자 한다.

공연장과 미술관에서 접근성은 자주 몇 가지의 물리적 요소로 치환된다. 휠체어 램프나 음성해설 기기를 확보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러한 눈에 보이는 도구들은 완벽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상태 그 자체로 편리하게 동일시되곤 한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태도와 끊임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사소한 문제인 접근성이 해결되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서 (더 중요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비무대지대》는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 그러나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이 향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후순위로 미루어지는 고민들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 거대한 담론을 고유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작게 쪼개면서 돌파를 시도한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무대라는 위계를 없애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많은 이들이 더 쉽게 접근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 작품이 되는 공간을 만든다.

연구셀 아인투아인(고재현, 김재아, 박현일, 박현진)과 창작셀의 구지수, 김내원, 황재현으로 구성된 “접근성” 리서치랩은 접근성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치고 낯설게 보고자 했다.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접근성의 개념에 다가가기 위해, 리서치랩은 연구와 창작의 두 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인 아만다 카치아(Amanda Cachia)는 창작의 과정에서 접근성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접근성 개념을 둘러싼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2)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기관이나 공간에 의해 시연이나 작품 설치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수행되는 것이라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다양한 질문과 경험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접근성” 리서치랩은 이 과정을 함께 겪고 확장시킨다. 디자인, 사진,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위키를 통해 위계와 마감이 없는 지식 생산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위키는 불완전하고 비전문적이더라도 다른 에디터의 존재에 의지하는 연대적 형식을 갖는다. 작가와 연구자뿐 아니라,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공간으로 《비무대지대》 를 상상했다.

《비무대지대》에서 상연되는 〈달아나다〉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소리 정보와 음성해설을 재료로 만들어진 연극으로, 2채널 비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구성된다. 영상의 수어 연기는 비장애인 배우 연기의 통역이 아닌 그 자체로 공연의 주요한 요소이며, 소리 정보는 소리의 인상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 그래픽으로 구현된다. 한편 인물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음성해설이 공간의 메인 스피커에 재생되고 있다. 모든 소리는 텍스트와, 텍스트는 소리와 나란히 있다. 모든 장애인, 비장애인 관객은 함께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 작가들은 이미 무대에 올라간 작품에 접근성 요소를 덧붙이는 대신에 소리 정보와 음성해설을 먼저 작업하여 농인과 청인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순서는 접근성을 위한 방법들이 다른 것들을 위해 축소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시간적, 개념적 층위에서 고유한 위치를 지키도록 만든다. 이는 전제되는 관객을 더 넓게 상상하는 일임과 동시에 작품이 존재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일 수 있다.

무대의 연출이 아닌 접근성을 위한 도구가 디딤돌이 되면서,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 〈달아나다〉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나 이미지의 재현 없이 경계를 넘어 관객에게 다가선다. 무대를 들어내고 자리한 작품의 전면에 소리 정보와 음성해설이 등장하는 것처럼, 전시장에는 점자와 묵자, 수어와 음성언어가 뒤섞인다. 언어는 서로 불일치하거나 충돌하지만 어떤 언어도 다른 언어를 위해 가려지지 않는다. 비무대지대는 넓은 범위의 관객을 위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창작 공간의 재현이자 (가상) 현실이며, 더 많은 이들이 같은 감상의 기회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관객은 작품을 여러 형식으로 만나고 접근성에 대한 지식을 함께 생산하는 방식으로 비무장지대에 초대된다. 무대를 들어낸 곳에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자라난다. 우리는 뒤집으며 무대/장벽/경계를 넘을 것이다.


1.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인 접근성은 “모든 장애(예술)인이 문화시설에서 향유 및 창작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서비스 또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리적·기술적 차원의 접근성 개념에서 나아가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와 기회를 확장하는 무형적 의미를 담보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접근성은 고착된 의미가 아니라 과정이자 원칙으로 이해되면서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2022).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 최보연, 정종은. 문화예술 분야 장애인 접근성 제고를 위한 개념적 고찰: 접근성 개념 및 관련 용어 분석을 중심으로. 교육연극학 2024;16(2):85-114.
3. Cachia, A. “Disabling” the Museum: Curator as Infrastructural Activist. Journal of Visual Art Practice. 2013.

(글. 김재아)
The exhibition Destaged Zone: To Reveal, Cross, and Flip brings accessibility into the present, a concept often downplayed. Exploring "accessibility" through research and creation methods, the ”Accessibility" Research Lab aims to uncover hidden elements for a seamless stage experience for non-disabled audiences. Destaged Zone creates an alternative reality where a broader audience, including divers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can participate equally in experiencing artworks by flipping hierarchies, crossing boundaries, and providing equal opportunities for all audiences.
2024. 07. 24. - 08. 02.
forever✰, Seoul

기획 | 김재아
디자인/운영 | 아인투아인
작가 | 구지수 김내원 황재현
연구 | 고재현 김재아 박현일 박현진
배우 | 김희화 남현아 윤아진 이현경
음성해설 | 백혜경
수어통역 | 황유경
수어감수 | 이상윤 전수훈
자문 | 김준범 김혜영
촬영 | 정진
주최/주관 | 김재아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협력 | 포에버 갤러리

Curated by | Jaea Kim
Design&Management | AYINTOAYIN
Artist | Jisue Gu, Naewon Kim, Jaehyun HWANG
Researcher | Hyunil Park, Hyunjin Park, Jaehyun Ko
Starred by | Huihwa Kim, Hyunah Nam, Ahjin Yoon, Hyunkyung Lee
Audio description | Hyekyeong Baek
KSL interpretation | Yukyeong Hwang
KSL supervision | Sangyoon Lee, Soohoon Jun
Advisor | Junbum Kim, Hyeyeong Kim
Filming | Jin Jeong
Hosted by | Jaea Kim
Organized by | Seoul, SFAC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Cooperated by | forever


본 전시는 2024년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지원〉에 선정된 프로젝트 ‘“접근성” 아티스틱 리서치랩’의 결과 공유회입니다.




≪ 누르고 다듬고 깎아내는 손≫, 2023
Pressing / Polishing / Carving

작품을 만나는 방법,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모두에게 동일한가?

시각장애인과 예술 교육 및 활동을 이어온 아트랩 '우리들의 눈'은 올해 15개의 공예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이끈 공예가들은 수도권 지역의 기관들에서 예술 창작의 기회를 쉽게 얻기 어려웠던 참여자들을 만났다. 시각장애, 지체장애, 발달장애, 그리고 장애 유형의 이름 이상으로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이들이 참여자로 함께 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예 작품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전시의 제목을 구성하는 '누르다', '다듬다', '깎아내다'는 공예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반복되는 행동이자, 참여자들이 작업 과정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들이기도 하다. 도자를 빚고 가죽을 잘라내는 손의 움직임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띤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다름은 전시된 작품들의 역동적인 스펙트럼을 만들어 냈다.

낯선 이들이 조우하며 생겨나는 질문들은 새로운 불꽃을 피워 낸다. 공예가들은 시각장애인에게 왁스 조각을 깎아내는 방법을 어떻게 전달할지, 이들에게 도자를 빚는 과정이 촉각적으로 어떻게 느껴질지 고민했다. 이 경험이 참여자들과 공예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자문하기도 했다. 이 질문들은 공예가와 참여자 사이를 오가면서 작품 창작의 과정에 기여했다. <누르고 다듬고 깎아내는 손>은 질문들에서 출발해 질문으로 도착한 물성을 손끝으로 더듬어 보고자 하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 역시 작품을 직접 만지고 흔들어 보거나 쥐어 보면서 만든 이들의 움직임을 좇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재아)

Is the process of encountering and creating artwork the same for everyone?
‘Another Way of Seeing’, an art lab dedicated to promoting art education and activities for the visually impaired, conducted 15 craft programs for vulnerable populations this year. The artisans leading each program worked with participants who faced challenges in accessing art education. Among the participants were individuals with visual impairments, physical disabilities, developmental disabilities, and unique characteristics that went beyond conventional disability labels.

Crafted pieces that can be integrated into our daily lives create a deep connection to our existence. The title, <Pressing / Polishing / Carving>, not only represents the repetitive actions involved in crafting but also reflects the words participants used to describe their creative processes. Although the hand movements may appear similar, the outcomes are as diverse and intriguing as the unique stories each of us carries. Regardless of disability, we all have our own senses, ideas, and preferences. These variations in our sensory experiences have contributed to a dynamic spectrum of exhibited works.

When unfamiliar individuals come together, it can ignite a new spark. The craftspeople considered how to effectively communicate the process of carving wax sculptures and how the tactile experience of polishing ceramics would feel to the visually impaired participants. They also reflected on what the craft experience meant to both the participants and the craftspeople themselves. These questions have driven the collaborative art creation process between the artisans and the participants. <Pressing / Polishing / Carving> is an exhibition that aims to explore the tangible outcomes of these questions, to be experienced through the fingertips.

We invite visitors to take the opportunity to follow the creative journeys of those who crafted these pieces by directly touching and experiencing the artworks during the exhibition.

2023. 11. 12. - 11. 19.
헬로우뮤지움


기획 | 김재아
자문 | 엄정순
사업총괄 | 김주혜
디자인 | 아인투아인
설치 | 윤정인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운영 | 사단법인 우리들의눈

Curated by | Jaea Kim
Advisor | Jeongsun Eom
Project Manager | Juhye Kim
Installation | Jeongin Yun

Hosted by |
Korea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rganized by | Korea Craft & Arts Design Foundation
Operated by | Another  Way of Seeing




≪ 화덕과 언덕≫, 2022
Kiln and Hill

(...) 인류세 박물관학(post-anthropocene museologies)라는 분야가 개중 하나인데 이 학문을 겁 없이 한줄 요약 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의 바깥에 서기.”  인간 바깥에서 인간을 바라보거나, 화이트큐브라는 뮤지엄의 밖에서 전시의 미래(어쩌면 정답)를 찾는, 어쩌면 다소 환상적fabuleux 접근을 지향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반추의 결과면서 동시에 너머를 좇는 한 청소년의 성장기 서사와 가능성을 고스란히 갖는다. 지구, 기후, 대륙과 같은 단어는 물론 필요하면 우주와 같은 스케일을 차용하는 것에도 주저가 없다. 한 수업에서 그녀의 말이 환경 파괴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을 일컫는 '기후불안증'에 이어 거대한 숫자와 통계가 대중에 던져지는 데이터 덤핑(Data Dumping), 나아가 하이퍼오브제(hyper-objet)에까지 이르렀다. ‘실재하지만 인류가 일상에서 수용하고 이해하기에 지나치게 거대한 개념.’ 실제로 이 단어가 이 전시 전반을 추동했다고 봐도 과언 아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오브에서의 작은 선언으로서 해민해와 박준하. (글 오웅진)
김재아: ‘언덕’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해민해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서 언덕은 어떤 공간일까요?

해민해: 저한테 언덕은 안식처이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예요. 구체적인 곳이라기보다는 사람 마음에 있는 어떤 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냥 편하고 흔한 장소. 누군가 어디에 갑자기 앉았는데 편하면 거기가 그 사람의 언덕일 수도 있는 거고. (...) 언덕이라는 곳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허물어진 언덕’과 ‘낡고 버려진 것들의 안식처’를 같은 의미의 표현으로 사용해요. 공사장이나 고물상 같은, 뭔가 부서지고 있는 공간에 있을 때 가장 편한 것 같아요. 발효되고, 스러지는 것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게 제가 작업하는 베이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재아: 작가님이 쓰는 단어나 작품에서 겹겹이 쌓인 다정함이 느껴져요. 쓰시는 글을 보면 모호하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뭔가를 쌓고, 씹어내고, 기다리고, 발효되고, 저어내는 장면들이요. 어떻게 보면 작품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해민해: 일종의 허공에 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너무 재미있고,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기도 하고요. 힘들었던 시기에 저는 시에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시인분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긴 답장을 받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 어떤 다정함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일 수도 있겠다, 이게 결국 예술의 몫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다정함들을 받고 저도 무럭무럭 이렇게 자라났다 보니 뭔가 저의 어떤 부분이더라도 다정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작품같은 경우에도 관객분들이 느끼는 다정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요. ‘여기에 와서 이 사람이 느끼는 다정함 만큼 나한테서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런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것들이 연결이 돼서 내 삶의 기반이 되는 것 같고요.
(...)
김재아: 금속 공예에도 여러가지 방식이 있는데, 작가님은 전통적인 대장장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시잖아요. 대장간에서 금속을 두드리는 일이 어떤 매력을 느끼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준하: 얼마 전에 충남 적정기술 공유센터에서 강사로 대장간 워크숍을 했었어요. 그때 어떤 분이 후기를 남겨 주셨는데, 망치질을 하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산 정상에서 밑을 내려다 보는 그런 느낌이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도 사실 처음에 몰입 같은 경험을 했어요. 그냥 망치를 잡고 두드리고 형태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 그냥 쑥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 행위에 집중하게 되고. 힘들고 뜨겁고 지저분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쇠 때리는 소리도 듣기 좋고 뭔가 그분의 표현대로라면 좀 상쾌한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지점이 있어요. 작업 자체가 주는 매력도 있고. 그리고 (쇠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사실 심심하거든요. 유리 같은 재료들은
안료를 넣어서 발색이 엄청 다양할 수도 있는데 쇠 같은 경우는 주물에 넣었다 빼면 그냥 시커매지고 갈아내면 그냥 하얘지고, 거의 그 정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의 끝이란 말이에요. 근데 사실 막 불에 들어갔다 나온 거친 느낌을 최적으로 잘 어울리게 살려낼 수 있는 그런, 황금 비율이라고 해야 할까요.어울리는 디자인들이 있더라고요. 그걸 찾아내는 재미가 있어요. 또 철이라는 재료의 고유한 그런 느낌들이 또 좋은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행위 자체의 매력이랑 그 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느낌이 저한테는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김재아: 어떻게 보면 라이프 스타일 역시도 필요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거네요. 작가님의 삶의 방식도 한국의 지역인 예산에 위치하고, 작품의 형태도 전통적이면서 로컬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박준하: 맞아요. 이번 전시에도 낸 <버선코칼>을 보면 버선처럼 칼의 앞쪽이 들려 있는 모양인데요. 이 칼 끝이 이렇게 생긴 이유가 있어요.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장독에 보관했잖아요. 옹기 안에 배추김치 여러 포기가 겹쳐 있어서 꺼내기 힘든데, 칼 끝을 갈고리처럼 사용해서 배추 김치를 건져 올리는거죠. 저도 (한국전통문화교육원에서) 이 칼의 형태를 배우면서 왜 굳이 저렇게 만들지 싶었는데, 교수님한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되게 그냥 우리나라의 어떤 식문화랑 되게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저렇게 발달해온 구나 싶어서 너무 되게 재밌었어요. 우리나라보다 대장간이 활성화돼 있는 나라들은 엄청 많아요. 여러 시도를 하고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고 대장장이들도 아직 많이 존재하는 곳도 있거든요. 그런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제 전통적인 자산, 문화적인 자산 그런 거 있잖아요. 그분들은 그걸 프라이드로 여겨서 콘텐츠가 유튜브나 인스타나 그런 데 엄청 많이 올라와요. 예를 들면 이제 일본에서는 회칼이 있잖아요, 그런 거나 일본의 벌목토인 나타 같은 걸 만든다거나, 유럽 지역에서는 신발의 나무 밑창을 깎기 위한 나무 깎는 칼이 별도로 있는데, 그런 거를 만드는 콘텐츠를많이 올리는 거죠. 우리나라는 사실 대장간들이 많이 죽어서, 사람도 적으니까 만드는 범위가 한정적인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제 얼마 안 되는 대장장이 유튜브들은 그런 다른 문화권의 콘텐츠를 보고 따라서 제품들을 만들게 되고, 그런 게 좀 아쉽더라고요. 버선코칼 같은 것도 왜 저렇게 생겨 먹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면 너무 재미있는 것들인데.


The exhibition Kiln and Hill explores themes related to the Anthropocene, focusing on cultural mediation and human-environment interactions. It challenges traditional exhibition formats by using unconventional materials such as bio-plastics or traditional Korean crafting methods, and incorporating daily practices as part of the artistic experience. The works engage with environmental issues, climate anxiety, and the scale of human impact. The exhibition also touches on concepts like hyper-objects, which are too vast for everyday understanding.  

2023. 11. 12. - 11. 19.
을지로OF

기획 | 김재아, 오웅진
참여 | 해민해, 박준하
후원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Curated by | Jaea Kim, Woongjin Oh
Artists | Haeminhae, Junha Park
Sponsored by | Yonsei University, Communication Graduate School